해가 뉘엿뉘엿 지는 바닷가에서 맨발로 갯벌을 걷다 보면, 발끝에 무언가 사각하고 걸리는 느낌이 듭니다. 고개를 숙여 손을 뻗으면 작은 조개 하나, 또 옆엔 소라와 게가 바삐 움직이고 있지요. 그렇게 조심조심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해루질’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조금 낯설었지만, 몇 번 다녀오고 나니 지금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소중한 취미가 됐어요. 오늘은 제가 직접 다녀온 곳들 중, 가족끼리, 친구끼리, 또는 혼자서도 조용히 즐기기 좋은 해루질 장소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바다 내음 가득했던 그 날의 공기까지 함께 담아 볼게요.
인천 영종도 – 하루 나들이로 딱 좋은 바닷가
서울에서 한 시간 반쯤 달려 도착한 영종도. 가까운 거리 덕분에 종종 찾게 되는 해루질 명소예요. 저는 왕산 해수욕장 근처 갯벌에서 해루질을 했는데, 생각보다 넓고 조용해서 아이들과 오기에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은 마침 물이 많이 빠지는 날이라 넓은 갯벌이 드러났고, 사람들도 삼삼오오 호미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죠. 저는 작은 고무 바구니와 장화를 챙겨 조심스레 들어가 봤어요. 몇 걸음 걷지 않아 조개가 톡톡 튀어나오고, 아이 손바닥만 한 게들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노을이 질 무렵, 조용한 바닷가에 앉아 잡은 해산물들을 하나하나 닦으며 보내는 시간이 참 평화로웠습니다. 도시 가까이에 이렇게 자연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충남 태안 – 해산물 천국에서 보낸 밤
태안은 예전부터 해루질로 유명하다고 해서 큰 기대를 안고 찾았던 곳이에요. 안면도 근처로 들어가니 작은 포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을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며 해루질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그날은 밤 해루질을 해보자 마음먹고, 현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조용한 어촌 마을에서 현지 어르신이 알려주신 대로 장화를 신고, 랜턴을 들고 바닷가로 나섰지요. 해가 완전히 지고 나니 바닷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그 속에서 조개와 낙지를 찾는 재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낙지는 생각보다 깊은 모래에 숨어 있었고, 발견하는 순간의 짜릿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갯벌에서 구불구불 빠져나오는 작은 게를 보며 웃음이 났고, 동행했던 친구와는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통했어요. 바다와 함께하는 시간, 그날 밤의 별빛과 갯벌의 조용한 움직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전남 여수 – 남해 바다와 푸른 하늘 아래
여수는 바다가 유난히 파랗고 투명해서, 그냥 걷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곳이에요. 해루질 장소로는 무슬목 해수욕장을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여름 저녁쯤 찾았는데, 바닷물이 빠진 틈 사이로 고둥과 소라가 드러나 있었어요.
이곳은 바위와 모래가 함께 있는 지형이라 색다른 해루질이 가능했어요. 파도가 잔잔한 날이었고, 물 아래로 비치는 조개껍데기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바구니가 가득 차 있더라고요.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들도 여럿 보였는데, 조용히 무언가를 찾는 그 모습이 참 따뜻해 보였어요. 여수는 주변에 바다 전망 좋은 카페도 많고, 잡은 해산물은 근처 식당에서 요리도 해주니 하루 코스로 딱 좋은 곳이었어요. 특히 바다 위로 붉게 물든 해가 질 때, ‘아, 여긴 꼭 다시 와야겠다’ 싶었답니다.
제주도 – 푸른 섬에서 만난 작은 생명들
제주에서는 관광만 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는데,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해루질을 해보자 마음먹고 김녕 해변을 찾았어요. 여기는 바위와 모래가 함께 있는 곳이라 해산물도 다양했고, 무엇보다 제주 특유의 바람과 자연이 함께해 그 자체로 힐링이었어요.
장화를 신고 바위를 조심조심 옮겨 다니다 보면, 소라나 성게, 가끔은 작은 문어까지 마주칠 수 있어요. 혼자였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어요.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손끝에 느껴지는 생명의 온기가 함께했거든요.
그날 잡은 소라 몇 마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접 삶아 먹었는데,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절로 미소가 났어요. ‘이렇게 자연이 주는 선물을 정성껏 나눠 먹는 게 바로 제주다운 하루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왔다면 훨씬 더 뜻깊었을 것 같아 다음엔 꼭 가족과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답니다.
해루질은 그저 재미있는 체험이 아니라, 바다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어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걸으며 작은 생명을 마주할 때, 마음이 말랑해지고 어느새 미소 짓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해루질은 반드시 안전과 예의를 지키는 체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때를 확인하고, 안전 장비를 갖추고, 아이들과 함께할 땐 더욱 주의하며, 무엇보다 잡는 양에 욕심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오는 것. 그것이 진짜 자연과 함께하는 방법이겠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도, 조만간 바닷가에서 조개 하나를 들고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마음이 복잡하거나, 자연이 그리운 날이라면 바다로 향해보세요. 해루질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우리 안의 여유와 감사함을 되찾는 길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